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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상록문화제 홈페이지 방문을 환영합니다.

심훈중앙대청소년(고등부)문학상
심훈 작가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1977년 제1회 행사를 시작으로
매년 9월말에서 10월초에 3~4일 동안 당진시 일원에서 상록문화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SIMHOON SANGNOK CULTURE FESTIVAL


산타 광장

 

- 소설 부문 장원 이희정 (안양예술고등학교)

 

빼빼마른 산타가 길 한복판에 서 있었다. 부직포같이 뻣뻣한 빨간 옷, 털이 서로 엉킨 엉성한 흰수염, 그리고 사이즈가 커서 눈까지 흘러내리는 모자. 어설프게 산타로 분장한 노인이었다. 산타는 상점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시계를 확인했다. 광장에 도착해야 하는 시간보다 20분이 지났다. 안절부절 못하며 서성이던 때, 산타의 발 끝에 축구공이 닿았다. 산타는 굴러가는 축구공을 따라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다 공을 주웠다. 공을 주우러 온 아이가 산타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어, 산타할아버지다!”

 

산타는 그 말을 듣고 가볍게 가짜 수염을 쓸어내렸다. 산타할아버지, 산타는 그 단어를 좋아했다. 아이들이 꿈꾸는 대상이자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흐뭇하게 아이를 바라보던 산타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시 광장을 찾았다. 남자가 준 약도는 산타가 보기에는 너무 작았다. 산타는 침침한 눈을 가늘게 뜨고 길과 약도를 번갈아보았다. 콘크리트 빌딩과 진회색 아스팔트의 연속인 길을 보며 산타는 한숨을 쉬었다. 산타의 눈에 세상은 똑같기만 했다. 산타는 회색 건물과 대비되는 자신의 빨간 옷을 기분 좋게 바라보다가 다시 길을 찾으러 뛰었다.

산타는 양로원에서 남자에게 스카웃 당했다. 한창 소파 구석에 앉아 조용히 있었을 때였다. 남자는 산타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에는 ‘이벤트 전문 업체’라는 글자가 크게 써있었다.

 

“저희는 바로 할아버지 같은 분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건 오직 할아버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남자가 능글맞게 웃으며 제안한 건 산타복장을 입고 광장에서 하는 크리스마스날 축제에 참석해달라는 것이었다. 최소시급도 주지 않는 저임금 아르바이트였지만 산타는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밖에 할 수 없는 일, 그 문장이 산타의 마음을 흔들었다. 산타는 서둘러 자신의 집으로 뛰어갔다. 원룸에는 퀴퀴한 곰팡내가 진동했다. 산타는 바로 수화기를 들어 아들 번호를 눌렀다. 한시라도 빨리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건 여자의 기계음이었다. 아들네 집, 며느리 번호로 걸어도 마찬가지였다. 뚜르르, 울리는 신호음만이 산타의 적막한 집을 채웠다.

 

산타는 남자가 준 산타복장을 입고 집을 나섰다. 여유롭게 나왔으나 광장을 찾는 데 시간이 지체되었다. 산타는 그동안 광장에 갈 일이 없어 위치를 몰랐다. 산타는 약도를 계속 노려보았다. 마침 횡단보도 너머에 약도에 표시된 건물이 보여 서둘러 건너가려고 했다. 그때 성난 클락션이 울리며 차가 산타의 코앞을 지나쳤다. 놀란 산타는 뒷걸음질치다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그를 힐끗 보았지만 아무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다. 노인은 스스로 일어나 터덜터덜 걸어갔다.

 

횡단보도를 건너 큰길에 들어서니 사람이 갑자기 늘어났다. 광장이 앞에 있음이 틀림없었다. 마침 눈송이가 한 송이씩 내렸다. 산타는 눈송이가 자신을 축복하는 거라 여겼다. 산타는 욱신거리는 엉덩이를 한 손으로 누르고 절뚝거리며 빠르게 걸었다. 한 걸은 디딜 때마다 산타는 자신을 둘러싼 아이들의 웃음을 상상했다. 그러나 그 앞에 다다랐을 때 산타는 걸음을 멈추었다. 산타는 인파를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인파 속에 섞여있는, 자신과 같은 산타들을 보았다. 그들은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남자는 산타를 보고서 성난 표정으로 외쳤다.

 

“아니, 멍하니 서서 뭐해요! 전단지 계속 돌려야지!”

 

남자는 산타가 이제 왔다는 사실도, 양로원의 그 노인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듯했다. 남자의 눈엔 다 산타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산타는 남자가 건넨 전단지를 받았다. 산타 이벤트, 크리스마스엔 진짜 산타와 함께. 산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보았다. 다 똑같은 눈송이였다.

노인은 산타가 있는 인파 속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곧 노인의 모습은 다른 산타들에게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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