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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상록문화제 홈페이지 방문을 환영합니다.

심훈중앙대청소년(고등부)문학상
심훈 작가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1977년 제1회 행사를 시작으로
매년 9월말에서 10월초에 3~4일 동안 당진시 일원에서 상록문화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SIMHOON SANGNOK CULTURE FESTIVAL


<시부문 장원 수상작>

 

 

무덤을 지키는 아이 – 아침기도

 

                                                                              백들(고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처음부터 나는 인형이었어야 했어 피를 흘리지 않을 테니

 

가장 오래 먹을 수 있는 걸 주세요 너무 빨리 삼켜버리면 시름시름 앓는 병을 주세요 입을 다른 까닭으로 쓰는 건 너무 많이 해봤으니까요

엄마는 아이스크림을 사주면서 말했지요 너는 조심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커튼을 열면 지난밤 녹아내린 눈밭이 보이고

아이스크림과 눈밭은 오래 둘수록 못생겨지는 거라고 엄마는 그랬지요

 

나 혼자만 깨어있을 때 얼른 냉장고를 열어서 꺼내왔지요

눈이 녹는 게 무서운 날에는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해요 포장지를 뜯어 앞니에 무는 순간부터 나는 눈과 비슷한 온도가 되니까

이가 시리니까 천천히 녹여 먹어야 해요 엄마가 내 이마를 짚어보기 전에

 

내리는 눈은 보는 눈보다 길게 발음해야 하는 걸 아니까

따뜻한 날씨엔 소리의 눈금을 재는 아이가 탄생해요

 

얼굴은 창밖을 향해 두어야 해요 발음이 비슷한 사물들은 서로를 향해 고개를 돌리기 마련이니까, 내 눈은 바깥의 눈을 볼 때 가장 하얗게 빛나겠지요

 

투명한 비를 투병이라 잘못 적었을 때부터 아팠던 것처럼

 

엄마는 오늘 봄옷을 사러 갔고 눈이 녹는 날은 집에만 있는 핑계가 없어지는 날 엄마 손을 잡고 병원에 가야 하는 날 풍경은 진짜 색깔을 드러내는데 나는 거짓말밖에 못하는 날 엄마가 그랬어요, 라고 의사 선생님께 말 못하는 날

 

햇볕에 살이 타 본 슬픔을 안고 있어서, 뼈는 열심히 위로만 자라고

 

자장자장 우리 인형 눈 뜨고도 잘도 잔다

갓난아이처럼 입에 물고 있어야 한심을 하는구나

 

저녁이 오면 눈ː이라 말해보는 걸 연습할 거예요 느리게 느리게

엄마 눈동자보다 눈밭이 오래 지켜줄 거라고 믿었던 날들

 

다 못 먹어서 바닥이 흥건해진다면 따뜻한 피가 돈다면

 

눈밭이 까맣게 물드는 건 발자국 때문이라던데, 왜 하얀 곳만 걸어도 발밑이 검어지는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는 이야기

 

하고 싶은 말이 많을수록 계절은 더 빨리 바뀐다는 이상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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