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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상록문화제 홈페이지 방문을 환영합니다.

심훈문학대상
심훈 작가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1977년 제1회 행사를 시작으로
매년 9월말에서 10월초에 3~4일 동안 당진시 일원에서 상록문화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SIMHOON SANGNOK CULTURE FESTIVAL


문학, 그 본연의 길

 

조정래

 

 심훈 선생은 1936년에 서른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요즘엔 병으로 치지도 않는 장티푸스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음해에 스물일곱 살로 떠난 이상과 스물아홉 살로 떠난 김유정에 비하면 장수한 거라고 위안삼아야 할까. 그 두 분도 폐병의 포로가 된 것이었으니, 시대 변화란 그렇게도 현격하다. 불과 80여 년 전인데도 의학 분야로만 보면 원시시대였던 셈이다. 그 시절에 태어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는 염치없는 생각도 든다. 어디 볼품없는 의학 수준 때문만이랴. 그때는 일본의 식민 치하였으니, 어찌할 뻔했는가.

 그 일제 치하에서 문학을 했다면 어떤 문학을 했을 것인가……. 가끔 깊이 생각하곤 했던 문제였다. 특히나 『아리랑』을 쓰면서 무슨 심한 병을 앓는 것처럼 신음하듯 그 문제를 골똘히 생각했었다. “당신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조선이오.” 독립투쟁에 앞장서고 있는 승려 공허를 통해 만주의 동포들에게 이렇게 말하게 하고, “당신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의무와 책임은 해방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고 그리고 이기는 것밖에 없다.” 어느 외국 선교사가 우리나라 젊은이에게 이런 말을 하게 하는 소설을 써나가면서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개개인 하나하나가 모두 조선이고, 잃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우고 이기는 것만이 조선사람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의무이고 책임인 시대에 문인들은 어떤 문학을 해야 했을까. 그 답은 너무 명료하고 자명하다. 그 시대적 요구와 민족적 사명에 충실히 응답하고 성실하게 실천하고자 했던 대표적인 문인이 있었다. 그 사람이 심훈이었다.

 심훈은 1930년에 신문에 소설을 연재하다가 일경의 정지 처분으로 중단해야 했다. 그리고 다음해에는 경성방송국에 문예 담당으로 취직했으나 사상 불온자로 취급되어 곧 내쫓겼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다음해에 시집 『그날이 오면』을 내려 했으나 검열에 걸려 간행하지 못하고, 13년이 지난 1949년에야 출간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935년에는 시대의 고통 속에서 민족의 미래를 열고자 하는 소설 『상록수』를 탄생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상록수』를 영화로 만들려고 했으나 일제의 노골적인 방해로 좌절되었다. 그런 수난 속에서 해가 바뀌어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자 거침없이 「오오, 조선의 남아여」를 써서 신문 호외에 발표하였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글이 되었다. 그리고 신변의 위협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런 시를 쓴 것도 그가 유일했다.

 심훈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시점에서 1930년대라는 식민지 상황을 재점검해야 하는 건 필수적이다. 식민지배가 30년째로 접어들고 있던 1930년대는 어떤 시대였을까. “그때 우리는 일본의 지배가 한 200년은 가리라 생각했었지. 인도처럼 말이야.” 왜 친일을 했느냐고 묻는 질문에 ㅅ 시인이 어김없이 했던 대답이었다. ‘그래서 친일을 아니할 수 없었다’는 의미가 담긴 이 대답은 무척 아리송하고 알쏭달쏭하다. ‘그러니 넌들 친일 안 할 수 있었겠어?’ ‘그러니 넌 앞날을 완전히 포기하고 평생을 그늘에서만 살 자신이 있어?’ 이런 되물음을 담고 있는 그 대답 앞에서 거의 모든 문인들은 침묵하거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ㅅ 시인의 그 대답은 친일한 사람들의 ‘모범 변명’이 되는 효과를 발휘했고, 그는 임종 때까지 그 입장을 굳건히 견지했다.

 그런 의식을 가진 ㅅ 시인이 1936년에 창간한 동인지가 《시인부락》이었다. 그건 《시문학》과 《구인회》와 함께 한국문학사에서 ‘순수문학’의 시대를 연 대표적 존재로 꼽힌다. 그리고 순수문학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학에서 그 위세가 무척이나 동등하다.

 그런데 그 ‘순수’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순수=비정치성’이라는 의미였다. 일제 치하에서 비정치성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일제가 어떤 식으로 폭압을 하고 무슨 짓을 하든 간에 문학은 그런 것을 외면하고 오로지 예술의 아름다움만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부락》과 《시문학》과 《구인회》가 공통적으로 내세운 것이 ‘인간성’이었고, 모더니즘을 비롯한 서양 사조를 무작정 받아들이고 모방하기에 급급했다. 그 시대의 대표적 순수문학으로 꼽히는 서정주의 「화사」나 김동인의 「광화사」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태어난 것이었다.

 그럼 1930년대는 어떤 시대였을까. 식민지 지배가 20년을 넘고, 3.1 운동의 열기도 식어 10년을 넘기면서 총독부의 지배력은 날로 강화되어 가고 있었다. 경찰력의 강화와 함께 만주로 가는 국경은 더욱 경계가 심해지고, 그에 따라 독립군들의 소식은 갈수록 감감해지고, 독립자금을 얻으러온 비밀요원들을 지주며 부자들이 신고해 버리고, 그럴수록 활동자금이 쪼들린 상해임시정부의 존재감은 희미해지고, 일본에서 신식공부를 하고 온 부자네 자식들은 사회 여러 방면에서 출세하며 거드름을 피우고, 그런 출세 바람에 면서기며 순사보가 되는 것도 출셋길이라고 여겨 각종 친일파들을 만들어대고, 그럴수록 독립과 해방에 대한 희망은 잦아들면서 사회적 체념과 절망감은 커져 가고, 일제는 중국 침략까지 노리며 한반도의 착취를 더욱 가혹하게 해 오오제의 소작료가 칠삼제로 바뀌면서 극심한 생활고에 견디다 못한 소작농들이 남부여대 만주로 살길을 찾아 떠나던 것이 1930년대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순수한 민족의식으로 뭉쳐 독립의식을 고취하고자 했던 신간회마저 해산되면서 1930년대의 시작은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 절망감을 해소시켜 주려는 듯 중국 땅에서 울려온 것이 윤봉길 의사의 의거였다. 그러나 그 충격적인 쾌거도 순수문학 의식에 사로잡힌 문인들에게는 별다른 충격일 수 없었다. ‘비정치적’이고자 하는 그들에게 윤봉길 사건은 ‘가장 정치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비정치적 예술’이라는 순수는 정치성을 띠어 입게 되는 피해를 완벽하게 피하고자 하는 자기 보신적 정치술이다. 그들은 그 교활한 정치술을 완벽하게 은폐하기 위해 ‘순수예술성’으로 포장하는 2차 교활까지 부리고 있는 것이다.

 많은 종류의 예술은 인간들이 발명해낸 무수한 발명품들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모든 발명품들은 한 가지 불변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인간에게 ‘유익’하게 쓰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문학도 그 어느 시대 어떤 상황에서나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유익하게 쓰여야 하는 것이 절대 명제다. 그러므로 문학은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해야 하고,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불의와 맞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유익성이 감동적으로 발현될 때에만 문학의 순수성은 달성된다. 그러므로 비정치성이 순수라는 말은 문학의 소임을 기꺼하고 외면한 비겁을 위장하기 위한 또 하나의 교활한 술수다.

 식민 지배를 당하고 있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문학이 유익하게 쓰이는 길은 무엇이었을까. ‘순수문학’을 외치며 모두 식민지 현실을 외면할 때 심훈은 『그날이 오면』을 쓰고, 『상록수』를 쓰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장티푸스에 걸려 서른다섯의 나이로 눈을 감으며 그의 심정은 어떠했으랴.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심훈 선생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기명 문학상이란 그분들의 문학 정신과 업적이 되새겨 본받아야 할 의미와 가치가 있을 때 제정된다. 그러므로 기명 문학상 제장은 그분들의 재탄생이고 부활이다.

 더구나 급변하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의 환경은 조국 상실의 그때처럼 어지럽고 복잡하다. 날로 강성해지는 중국과 미국의 노골적인 갈등, 일본의 호전적 우익화, 북한의 원폭 보유국 노림수와 풀리지 않는 남북 경색, 러시아의 ‘강한 러시아’ 추구의 꿈틀거림, 경제와 안보라는 두 중대사가 중국과 미국에 걸려 있는 우리의 상황은 그 어느 것도 손쉬운 것이 없다.

 이런 시대에 심훈 선생이 살아 계셨더라면 어떤 글을 쓰셨을까. 제2, 제3의 『상록수』 쓰기를 서슴지 않으셨을 것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민족의 미래를 설계했던 그 꿋꿋한 문학정신은 오늘에도 새롭게 필요한 문학 본연의 길이다.

 심훈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첫 번째 수상자로서 내가 합당한지를 다시금 생각한다. 부족함이 있으면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 노력만큼 확실한 약속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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