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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문학대상
심훈 작가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1977년 제1회 행사를 시작으로
매년 9월말에서 10월초에 3~4일 동안 당진시 일원에서 상록문화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SIMHOON SANGNOK CULTURE FESTIVAL


머리에 이는 의무

-심훈의 「그날이 오면」을 받들면서

 

고은

 

 

옛 시의 ‘젖은 넋(魂濕)’이 지금의 내 목마른 정신의 행태(行態)를 타이른다.

이런 분주한 하루하루의 어느 날 나는 외국인 상대의 강연 직전에 수상(受賞)의 소식을 들었다. 그때는 사무적인 감회뿐이었다.

 

부끄러운 노릇이다.

1970년대 후반 나에게 관심을 가진 한 일본지식인이 가져다 준 책을 통해서 심훈을 새삼스럽게 만났다. 역수입(逆輸入)이었다.

그 책은 영국 옥스포드대 시학교수 C.M. 바우라의 『시와 정치』 일본어판이었다. 1965년 벨파스트대 초빙강좌 4회 강연내용을 엮은 것이다. 1966년 영어판을 발 빠른 일본에서 번역 간행했다.

바로 이 책 안에서 내 뜨거운 시선이 ‘심훈’이라는 이름과 ‘그날이 오면’이라는 불후의 작품에 꽂혔다. 아마도 현대한국시의 어떤 시편이 해외에서 품위 있는 시론의 당당한 텍스트로 오른 사례는 이것이 처음일 것이다.

시론 『시와 정치』’는 세계 유수(有數)의 저명한 시인들의 작품을 통한 시와 정서 그리고 시로서의 현실 성찰을 무척 침착하게 펼치고 있다. 멀리는 중세 단테에서부터 가까이는 네루다, 아흐마토바, 엘리엇, 아라공, 엘뤼아르에 걸쳐 하나의 시적 통사(通史)를 이루고 있는 거시적인 시야였다.

총 4장으로 나뉜 책의 제3장 ‘개인적 전망’에서 엘리엇, 마차도, 발레리, 모택동, 콰지모도, 파스테르나크, 세페리스, 슈타이너들과 함께 한국의 심훈이 열거(列擧)되어 그의 시 한 편이 식민지시대 암흑의 한반도가 가진 열망을 들어 올리고 있다.

저자 바우라는 고대 그리스문학의 세계적 석학이다. 또한 이에 못지않게 러시아문학의 권위자이다. 이런 광활한 연구 분야의 한 가녘에서 어떻게 동아시아의 시 한 편을 멀리서 불러들였는지도 궁금하지만 이 시에의 그 온유한 조명 역시 신기하기만 했다.

한국의 시가가 다른 언어로 옮겨져서 지구 저쪽의 한 대학 연구실에 닿기까지의 그 특이한 여정(旅程)도 매우 비현실적이었다. 그러므로 어떤 영혼의 생태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다른 지역의 정신에 합전(合電)되는 상태를 발생시키는 일은 놀랍다. 몇 천 킬로미터 혹은 몇 만 킬로미터의 거리는 철새들의 거리만이 아닌 것이다.

 

나는 이 경륜의 시론에서 정작 그 원작의 한국어 작품에 앞서서 영어판의 일본어 중역인 작품으로 이 시를 읽었다. 그 불운이 그 뒤의 오랜 행운이 되었다.

이윽고 ‘그날이 오면’의 한국어 작품에 나는 제대로 사로잡혔다. 그의 시속의 상당한 세월을 지나서 결집된 시집도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지금의 기억으로도 그 시는 즉흥성과 직관성의 강인한 서정인데 뜻밖에 경음악적 쾌감을 그 특장(特長)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의 유망한 국민소설 『상록수』를 비롯해서 식민지 문단과 사회 전반에서 인구에 회자된 많은 장편과 단편들은 읽어볼 겨를이 없었다.

오로지 심훈은 나에게는 ‘그날이 오면’으로 가슴 깊이 새겨져서 그 작품에의 일원론적인 흠모로만 다해진 것이다. 저 1970년대 이래 상당한 기간 그것은 내 실시간의 충동 기제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은 하나의 현장 주술이었다.

어쩌면 이런 경우의 강렬한 정념이나 의식과는 별도로 내 회색의 무의식 가운데 이 시를 만나기 전의 1960년대 나의 시 ‘종로’ 와 1990년대 중반의 ‘화살’들과도 그 자폭적인 강령정서(剛領情緖) 안에서 서로 교감한 것인지 모른다. 그것은 귀신의 일이다.

 

‘그날이 오면’의 시인 심훈은 나에게는 어느 누구와의 합의 따위도 필요 없이 내가 지향한 바 민족문학의 노선으로서나 그것의 산개(散開) 이기도 한 세계문학의 차원으로서나 하나의 원인으로 제공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1970년대 말 자주 이 시를 열렬하게 인용함으로써 내 강연을 통한 심훈의 일반화를 꾀했다. 나 자신이 이 시를 열창으로 낭독하면서 온몸의 고온(高溫)을 체험했다.

뇌가 아니라 뇌수의 시이고 종이 아니라 난타하는 종소리의 시인 것이다. 그리고 이 시는 무엇보다도 식은 피를 거절한 시뻘겋고 뜨거운 피를 잉태함으로써 그 압제의 질곡을 타파하는 해방에의 우렁찬 갈구로 차 있다.

시의 전신성(全身性)이야말로 시 라는 선언이 있지만 그것이야말로 이 시가 완성한 시론일 것이다.

이쯤에서 더 이상 미루어두지 못할 한반도의 명시(名詩)이자 세계의 양심이 지지하는 작품 ‘그날이 오면’ 전문을 여기에 각인한다.

 

‘그날이 오면(오면은)’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할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드리받아 올리오리라.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리이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바우라는 심훈의 시세계를 이루는 현대한국의 현실을 예리하게 개관하고 있다.

그는 이 시가 있기 전의 3.1운동과 그 뒤로 이어지는 투옥과 고문 그리고 죽음의 중압을 견디어내는 민족의 혼을 찬탄한다. 그 예로서 ‘그날이 오면’이라는 미지(未知)의 시편에 매혹되는 것이다.

‘한국의 시인은 독일시인처럼 잔혹한 상황에 구속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설사 멀었다 해도 감격적인 미래가 환기하는 자주적이며 숭고한 기분이다. 한국의 산, 강, 서울의 중심인 종로의 종과 같은 눈 익은 환경 속에서 그의 비전은 설정된다. 자연이 그의 기쁨을 같이하며 일어나 함께 춤추리라고 강조하는 그는 다비데의 시편에서 그 유형을 보는 고대적 공상을 사용하여 ‘감성적 오류’의 기분 좋은 변형으로서 고양된 경우 인간의 물리적 환경은 그 기쁨을 꼭 나누어 가진다는 사상을 구체화한다.

그러나 이는 그의 본래적 목적의 일이다. 그가 예견하는 것은 한국의 해방이며 국토와 국민 모두가 쇠사슬에서 풀려나는 일이다. 그는 이것들 계급과 배경의 여하를 불구하고 모든 동포가 이해할 수 있는 이미지로 형성한다.’

이 밖에도 그의 깊은 관심은 더 자상하게 전개된다.

이런 머나먼 곳의 한 시학교수가 만난 ‘그날이 오면’은 나에게는 때마침 내 민족문학의 저항성에 그대로 이입되는 공감 때문에 바로 이 시 세계는 지난 시대가 아니라 동시대의 세계로 체화(體化)된 것이다.

특히 1970년대 이래 20년간을 저 20세기 벽두의 외세 침노와 맞선 주체적 정서의 고양(高揚)인 식민지시대의 지사적(志士的)인 시 세계를 재생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한말의 의병전쟁과 독립전쟁 그리고 망명지에서의 투쟁을 통한 우국시나 일제 만행에 항거하는 전투적 표현들은 바로 군사정권의 독재의 압박에 맞선 민족 민중의 시적 운동에 재현되는 것이다.

독재 자체가 식민지적 유산을 숭배한 것이라면 식민지시대의 나와 1970~1980년대의 나는 문학적, 역사적 동의어(同義語)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심훈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육성을 가진다.

 

나는 한국시의 오늘을 새로운 보편성 촉구로 말하고 싶다. 이것은 비단 시의 문제만이 아니라 문학전반 내지 문화에 대한 정체성(正體性)과 개방성을 아우르는 문제에 해당된다.

인류사 1만 년 이상의 선사적(先史的)인 오랜 기간이나 역사시대의 온갖 삶의 방식을 터득하는 동안 거기서 생겨난 보편성의 가치는 동서남북을 망라하는 가치일 것이다. 이를테면 행복이나 평화, 사랑, 윤리와 자연에의 외경들이 그렇다. 그것은 아프리카의 것과 유라시아의 것이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아름다움의 보편성은 유럽의 미학과 동양의 미학에서라면 일정한 상보적(相補的)인 차이가 일어난다. 정의(正義) 역시 서구중심사관의 그것. 서구의 팽창과 함께 하는 기독교문명에서의 정의는 그것의 객체가 되었다. 근세 아프리카나 근대 아시아에서는 그 의미가 지극히 일방적이다. 즉 누구의 정의는 다른 누구에게는 불의(不義)이다. 이것은 현대 문명에서의 자유 역시 자본주의적 자유개념은 시장의 지배와 깊이 관련되는 것이다.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가 세계경제의 자율성에 한없이 영향을 미치는 그 현실에서도 드러나는 차이이다.

그런 나머지 어느 쪽이나 같은 의미일 행복조차도 나의 행복은 너의 불행이 되는 경우 그것의 보편성을 잃어버린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이제까지 익숙해진 보편성이란 그것이 국가나 민족개념의 제한된 영역을 넘어서는 가치일 경우에도 근대 서구의 보편성이 여타의 지역 보편성으로까지 여과 없이 편재(偏在)한 사실이 지적된다.

지난 날 봉건시기의 전통사회에서 중국의 천하 보편성이 그대로 중국 주변에 적용되어온 사례에서도 이 같은 사실이 지적될 수 있다.

사실인즉 지금 이 태양계 행성 위의 보편성이라는 것도 어느 한 지역의 특수성이 발전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어느 후회 많은 지혜가 다른 삶들의 새로운 지혜를 바꾸는 동안 한 곳 이상의 진실을 실현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까지의 모든 보편성은 어디선가의 특수성의 심화확대라고 말하고 싶다.

그 뿐 아니라 보편성도 영구불변의 법칙이 옹호해줄 이유는 없다. 그것의 기승전결도 있고 그것의 흥망도 있어야 한다. 경탄은 언제나 개별적인 실천을 통해서 이룩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한국의 시가 허장성세 없는 깊은 추구를 통해서 세계시의 내일에 온당한 참여를 주도할 수 있다는 기상(氣象)을 낳아야 한다. 그래서 유럽의 시가 보편성을 과시하며 한국시에의 보편성 촉구를 말하는 기이한 현상은 더 이상 없어져야 할 것이다.

보편성은 어디서 빌려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내는 자아의 것이다.

어쩌면 바우라가 ‘그날이 오면’을 다른 서구 시편들과 함께 파악하는 ‘상황을 보라. 명확한 보편적 성격을 띠고 현재의 순간보다 월등하게 의미 있는 무엇인가를 잡을 수 있는, 그러한 퍼스펙티브 속에 놓고 볼 수 없는 것’은 1960년대 시 담론을 떠나 60년이 지난 오늘 새로운 인식으로 될지 모른다.

나는 러시아나 동구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에서 축복 받는 시가 한국에서 저주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가는 세계의 어느 장소도 나와 함께 시의 잔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한다.

시는 언제 살아 있다가 언제 죽는 것이 아니다. 시는 이 지상에서 인류와 함께 일어나 인류 없이도 있어야 할 우주의 심미적 파동(波動)인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어린 농부이기도 했다. 아버지로부터 지게 지는 법을 배웠다. 배운 뒤로도 지게에 쌓아올린 짐을 잘 지탱할 수 없어서 곧잘 지게하고 한 몸이 되어 쓰러졌다.

만약 내가 사내가 아니라 그 당시의 말로 말하면 계집애로 태어났다면 어머니한테 머리에 물동이 이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충남 당진의 신새벽에 아주 부지런한 처녀가 일어나서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우물로 가서 첫 우물물인 정화수를 길러 나서노라면 그때 저 바다 건너 중국 산동성의 바닷가 마을에서 건너오는 게으른 닭울음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이번 심훈의 생애 마지막을 바쳐서 이루어놓은 브나로드 운동의 세계인 상록수 여성의 뜻에 감히 나도 물들어 본다. 그래서 나도 한 사내가 아니라 지난날의 그 처녀로 돌아가 머리에 물동이나 들밥 광주리를 무겁게 이는 내 임무를 상상한다.

시에 대한 내 의무는 이토록 토착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의무는 강제나 강박을 거부한다. 의무는 삶의 기반인 중력(重力) 안에서 내 심신 속의 자연이고 무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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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본명은 고은태로 1933년 전북 군산에서 출생하였다. 1952년 20세의 나이로 입산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법명은 일초(一超)로 효봉선사의 상좌가 된 이래 10년간 참선과 방랑의 세월을 보내며 시작 활동을 하다가 1958년 『현대문학』에 시 「봄밤의 말씀」 「눈길」 「천은사운」 등을 추천받아 등단하였다. 1960년 첫 시집 『피안감성』을 출간했으며 1962년 환속하여 시인으로, 어두운 독재시대에 맞서는 재야운동가로서의 험난한 길을 걷기도 했다. 초기시는 주로 허무와 무상을 탐미적으로 노래한 반면 이후 어두운 시대상황과 맞물리면서 현실에 대한 치열한 참여의식과 역사의식을 표출했다. 영웅주의에 물들지 않고 진솔한 삶의 내면을 드러내는 독특한 시 세계를 보여주었다.

1974년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를 출판하며 시인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으며 이후 시ㆍ소설ㆍ수필ㆍ평론 등 100여 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주회복국민회의, 민족문학작가회의 등에 참여하며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앞장섰으며 계속해서 1984년 『고은시전집』을 냈고 1986년 『만인보』 간행을 시작했다. 1987~1994년 서사시 『백두산』, 1999년 시집 『머나먼 길』을 간행하고, 미국 하버드대학 하버드옌칭 연구교수, 버클리대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전 세계 10여개 언어로 50여권의 시집, 시선집이 간행되었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 시 아카데미 회원 한국대표이자 서울대학교 초빙교수, 단국대학교 석좌교수이다. 저서로 『허공』 『개념의 숲』 『오십년의 사춘기』 『고은 시 선집』 『고은 전집』(총 38권) 등 1백여 종이 있으며, 2010년에는 연작시편 『만인보』가 전 30권으로 완간되었다. 2011년에는 작품 활동 53년 만에 처음으로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연시집 『상화 시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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